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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마력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볼보 EX90 트윈 퍼포먼스 울트라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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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의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 EX90이 국내에 정식으로 상륙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2026년 3월 24일 사전계약을 시작해 4월 1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오래 기다린 모델인 만큼 배경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EX90은 2022년 11월 세계 최초로 공개됐지만, 라이다 소프트웨어 통합 문제와 초기 소프트웨어 완성도 논란으로 출시가 여러 차례 미뤄졌다. 볼보는 2025년 9월 초기 모델의 한계를 상당 부분 보완한 2026년형을 내놨고, 국내에 들어온 물량이 바로 이 개선형이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라인업 최상단인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최고출력 680마력짜리다. 다만 이번 시승은 한 시간 남짓의 짧은 주행이었고, 속도를 충분히 내볼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그 짧은 시간에도 인상은 비교적 또렷했다. 요약하자면, EX90의 매력은 가속보다는 노면을 걸러내는 방식과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쪽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 인상을 조금 아쉽게 만든 것이 인터페이스였다.

절제된 외관, 미니멀리즘의 실내

EX90의 외관은 요란하지 않다. 전장이 5m를 넘는 큰 차체를 과장된 장식 없이 매끈한 면으로 다듬어냈고, 이런 설계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공기저항 계수(Cd)는 0.29로, 이 체급의 대형 SUV에서는 흔치 않은 수치다. 도어 핸들은 차체에 매립됐고, 사이드미러 조작 버튼까지 도어 트림 안쪽으로 통합해 표면을 정리했다.

야간 주행의 인상을 좌우하는 헤드램프는 백만 화소가 넘는 HD 픽셀 매트릭스 방식으로, 마주 오는 차량 방향의 빛만 정교하게 낮춘다. 다만 이 고해상도 헤드램프와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 소프트 도어 클로징 등 상당수의 프리미엄 사양은 울트라 트림에서 만날 수 있다. 엔트리인 플러스와의 체감 차이가 여기서 갈리는데, 이 트림 구성은 뒤에서 다시 짚겠다.

실내는 미니멀리즘의 결정판이다. 14.5인치 세로형 센터 디스플레이 하나에 주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을 몰아넣었다. 천장에는 버튼 하나로 투명도를 조절하는 일렉트로크로믹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가 적용돼, 전고를 낮추고도 실내 개방감을 확보했다. 시각적으로는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그 미니멀리즘이 운전 경험에 남긴 아쉬움도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이면 — 조작이 화면에 집중되며 생긴 불편.

이 차를 타면서 가장 자주 든 아쉬움은 인터페이스였다. 물리 버튼을 거의 없애고 대부분의 조작을 화면 안으로 옮긴 구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티어링 휠 위치를 한 번 바꾸려면, 차량 설정으로 들어가 퀵 컨트롤을 거쳐 운전자 조정, 다시 스티어링 휠 항목까지 여러 단계를 파고들어야 한다. 스티어링 조절을 자주 할 일은 아니라 해도 단계가 조금 많게 느껴졌다. 도어에서 사라진 사이드미러 접힘 같은 버튼들도 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게다가 그 화면을 처음 보면 무엇을 조절하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좌우 선택 버튼은 있는데, 정작 어떤 항목인지는 작은 그림을 보고 유추해야 하는 식이다.

시트 포지션도 비슷하다. 출발 전에 자세를 맞춰두는 게 가장 좋다지만, 실제 운전은 그렇게 정적이지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낮은 도로를 지나다가, 장애물 많은 마트 주차장에 진입하며 옆을 확인해야 할 때마다 운전 자세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차는 그때그때 시트 포지션을 바꾸기가 번거로운 편이었다. 사이드미러 하나를 조절할 때도 계기판 화면에서 버튼이 눌렸는지를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기계 조작에 익숙한 편인데도, 이 부분은 손이 꽤 많이 갔다.

특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680마력에 제로백 4.2초라는 빠른 성능을 갖춘 차인데, 정작 운전에 집중하도록 돕는 배려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다. 가속이 빠른 만큼, 주행 중 조작을 위해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는 구성은 안전 측면에서 살짝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 아쉬움은 EX90만의 것도 아니다. 앞서 EX30을 탔을 때도 비슷하게 느꼈던, 최근 볼보의 공통된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나마 EX90은 계기판 역할을 하는 별도 디스플레이가 앞에 하나 더 있어, 내비게이션 등을 위해 센터 화면만 계속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EX30보다 나았다.

Screenshot

이 차의 강점 (1) — 오디오

아쉬움을 먼저 적었지만, EX90에는 그를 충분히 상쇄하는 강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오디오다.

울트라 트림의 바워스앤윌킨스 사운드 시스템은 25개의 스피커와 1,610W 출력을 갖췄고, 애비로드 스튜디오 모드와 돌비 애트모스 기반 입체 음향을 지원한다. 애플뮤직 무손실 음원을 재생하면, 특정 대목에서는 시트를 통해 진동까지 전해질 만큼 몰입감이 좋았다. 인상적인 순간이 적지 않았다. 이 몰입을 떠받치는 것이 정숙성이다.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비롯한 정숙 설계 덕분에, 속도를 올려도 음악은 또렷하게 유지됐다.

이 차의 강점 (2) — 조건을 감안하면 놀라운 에어 서스펜션

둘째,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차의 본질에 가깝다고 느낀 것은 승차감이다. 울트라 트림에만 들어가는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이 이 차의 성격을 상당 부분 규정한다.

조금 기술적으로 접근해 보자. 전기차는 하부에 무거운 배터리를 깔고 있어 차체 중량이 크다. 여기에 22인치 대구경 휠과 편평비 40의 얇은 타이어(265/40 R22)까지 물렸다. 물리적으로만 따지면 승차감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대개 그렇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불리한 조합에서 이 정도 승차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에어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주행 질감은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했다. 촬영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코너와 고속도로 진입 램프를 돌아봤을 때, 진입 속도에 비해 차가 자세를 안정적으로 잡아줬다. 표준 모드로 코너를 돌 때 노즈 다운은 제법 느껴졌지만, 좌우 롤은 잘 억제되는 편이었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바운싱과 피칭은 롤에 비하면 조금 더 있었으나, 이 체급의 무거운 대형차 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보통 크고 무거운 SUV나 서스펜션이 무른 차는 ‘배를 탄 듯’ 출렁이는 느낌이 있다. 최근 탔던 GV80에서도 그런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는데, EX90은 조건상 더 불리한데도 그런 느낌이 덜했다.

서스펜션 감도를 단단함으로 바꾸자 차이는 좀 더 분명했다. 내리막에서 가속했을 때 노즈 다운이 억제되는 정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앞뒤 무게 배분은 뒤쪽이 조금 더 무거운 약 43대 57 수준으로 파악됐는데, 이 뒷무게가 주저앉지 않도록 받쳐주고 가속 시 노즈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서스펜션이 세팅된 인상이었다. 그래서인지 노즈업보다 오히려 노즈 다운이 조금 더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생각이 정리됐다. 과거 에어 서스펜션이 없는 볼보 투어링 트림을 시승했을 때, 나는 “볼보는 안전하고 좋은 차지만 승차감만큼은 조금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같은 모델이라도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가니 인상이 꽤 달라졌다. 결국 이 차의 승차감을 만드는 상당 부분은 에어 서스펜션의 몫이라고 느꼈다. 이걸 빼면 이 차의 매력이 꽤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력 — 넉넉하지만, 이 차의 중심은 아니다

EX90은 전 트림이 4륜구동(AWD) 듀얼 모터 구성이다. 이번에 탄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최고 500kW(680마력)를 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2초에 도달한다. 기본형인 트윈 모터도 335kW(456마력)에 제로백 5.5초로 부족함이 없다. 대형 7인승 SUV의 덩치를 생각하면 스포츠 세단에 가까운 수치다. 실제로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살짝 얹고만 있어도 몸이 시트에 눌릴 만큼 힘은 넉넉했다.

다만 앞서 밝혔듯 이번 시승은 한 시간 남짓, 서울 시내 위주로 진행돼 이 출력을 제대로 끌어내 볼 기회는 없었다. 고속 주행이나 스포츠 주행을 충분히 시도하지 못한 점은 이번 시승의 한계로 남겨둔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이 차의 매력을 ‘출력’에서 찾는 시선도 있지만, 정작 EX90을 EX90답게 즐기는 데 680마력이 필수는 아니라고 느꼈다. 이 차가 특히 잘하는 것은 빠르게 달리는 일이라기보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멀리 가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2열은 여유, 3열은 현실적 한계

3m에 가까운 긴 휠베이스 덕분인지, 2열은 이 차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캡틴 시트 구성의 편의 장비가 충실하고, 무엇보다 승차감이 좋아 뒷좌석에서의 멀미 걱정이 적었다. 반면 3열은 눈으로 봐도, 실제 앉아봐도 성인이 장거리를 타기에는 다소 빠듯하다. 비상용이나 어린이 탑승 정도로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EX90이 7인승과 6인승(2열 독립 시트) 두 가지 좌석 구성으로 판매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800V로 갈아탄 충전, 그리고 주행거리

2026년형에서 가장 실질적인 변화는 파워트레인 아래에 있다. 기존 400V에서 800V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충전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최대 350kW 급속 충전으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면 채운다.

주행거리는 짚어둘 필요가 있다. 배터리 용량은 106kWh 수준인데, 국내 환경부 인증 주행거리는 1회 충전 시 448km다. 요즘 전기차들과 비교하면 배터리 용량 대비 아주 여유로운 거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뒤 모터를 모두 굴려 680마력을 내는 무거운 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절대 주행거리보다는 빨라진 충전으로 사용성을 메우는 쪽에 가깝다.

안전과 소프트웨어 — 방식이 바뀌었다

안전은 여전히 EX90의 중심축이지만, 방식이 바뀌었다. 초기 모델의 상징이던 루프 라이다는 2026년형에서 제외됐고, 카메라·레이더·초음파 센서 조합으로 주변을 인식한다. 볼보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략에 따라 중앙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대폭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승에서는 일부 주행 보조 기능이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있었다. 개별 차량의 일시적 이슈일 가능성도 있어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초기 모델부터 이어져 온 소프트웨어 논란의 이력을 떠올리면 안정화가 실사용에서 어떻게 다져지는지는 조금 더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볼보는 5년 또는 10만㎞ 무상 보증과 8년 또는 16만㎞ 고전압 배터리 보증에 더해, 15년 무상 무선 업데이트(OTA)를 기본 제공한다. 타는 동안 기능이 계속 갱신되는 스마트카의 경험을 강조하는 셈이다.

총평 — 그리고 트림 선택에 대한 생각

EX90은 화려함보다 절제를, 자극보다 완성도를 택한 SUV로 다가왔다. 정숙성과 승차감, 오디오의 완성도는 플래그십이라는 이름값을 잘 해냈다. 반대로 모든 조작을 화면으로 통합한 인터페이스는 익숙해질 시간을 요구하고, 그 방향성이 주행 중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프트웨어 안정화 역시 좀 더 지켜볼 부분이 있다.

트림 선택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플러스와 울트라의 가격 차이는 약 1,000만 원인데, 그 차액에 바로 에어 서스펜션과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가 들어간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두 가지가 이 차의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 나는 원래 옵션을 최소화한 기본형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차만큼은 그 옵션 값이 아깝지 않다고 느꼈다. 승차감과 하체 감각은 타면 탈수록 만족도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왕 살 거라면 플러스보다는 울트라 이상을 권하고 싶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 차의 장점은 속도나 스포츠 주행보다는 공간감과 편안함, 그리고 조용함에 있었다. 그 가치를 누리는 데 퍼포먼스(680마력)가 반드시 필요하진 않지만, 돌비 사운드 시스템과 에어 서스펜션만큼은 권하고 싶다. 한 시간 남짓의 짧은 시승이었지만, 그 안에서 받은 인상은 그랬다.

끝으로 가격을 정리하면, 트윈 모터 플러스 7인승이 1억 620만 원으로 시작한다. 트윈 모터 울트라는 7인승 1억 1,620만 원,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7인승 1억 2,120만 원이며, 두 울트라 트림의 6인승 모델은 각각 200만 원가량 높다. 플러스 시작가는 기존 XC90 T8(PHEV)보다 약 1,000만 원 낮은 수준으로, 볼보코리아가 전면에 내세우는 대목이기도 하다.